백석/ 산숙山宿

여인숙旅人宿이라도 국숫집이다

모미가루포대가 그득하니 쌓인 웃간은 들믄들믄 더웁기도 하다

나는 낡은 국수분틀과 그즈런히 나가 누워서

구석에 데굴데굴하는 목침木枕들을 베여보며

이 산山골에 들어와서 이 목침木枕들에 새까마니 때를 올리고 간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 사람들의 얼골과 생업生業과 마음들을 생각해 본다

 

 

 

 

 

 

「산숙山宿」에는 1930년대 함경도 산골의 전형적인 풍경과 그 당시 사람들의 생활이 압축적으로 그려져 있다. 국숫집에다 여인숙을 겸해 장사를 하는 이 집에는 손님이 묵는 방에도 밀가루포대와 국수분틀이 있다. 이 방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목침이다. 이 오래된 목침에는 새까만 때가 올라 있다. 화자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고 목침에 때를 올리고 간 사람들을 '생각한다'고 말한다. 백석은 여러 편의 시에서 '생각한다'라는 서술어를 사용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무색무취할 정도로 밋밋하고 시의 산문적 서술에 기여하는 말이 '생각한다'이다. 그런데 이 말이 백석의 시에 와서는 독자의 상상력을 극대화시키고 시의 폭을 한없이 넓히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저 아무렇지도 않게 쓴 듯한 '생각한다'는 목침에 때를 올리고 떠난 사람들, 즉 생계와 생활을 해결하기 위해 산골의 광산촌을 떠돌거나 만주 등지로 길을 떠나던 1930년대 후반의 우리 민족을 떠올리게 하는 묘한 힘이 있다. 시인은 때 묻은 목침 하나를 통해 대다수 우리 민족 구성원들의 현실을 제시하는 것이다. 또한 자신도 역시 목침에 때를 올리고 갈 사람이라는 암시를 통해 공동체의 한 구성원이라는 인식을 강하게 보여주고 있다. (안도현, <백석 평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