挹注百祥

여인숙旅人宿이라도 국숫집이다 모미가루포대가 그득하니 쌓인 웃간은 들믄들믄 더웁기도 하다 나는 낡은 국수분틀과 그즈런히 나가 누워서 구석에 데굴데굴하는 목침木枕들을 베여보며 이 산山골에 들어와서 이 목침木枕들에 새까마니 때를 올리고 간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 사람들의 얼골과 생업生業과 마음들을 생각해 본다 「산숙山宿」에는 1930년대 함경도 산골의 전형적인 풍경과 그 당시 사람들의 생활이 압축적으로 그려져 있다. 국숫집에다 여인숙을 겸해 장사를 하는 이 집에는 손님이 묵는 방에도 밀가루포대와 국수분틀이 있다. 이 방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목침이다. 이 오래된 목침에는 새까만 때가 올라 있다. 화자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고 목침에 때를 올리고 간 사람들을 '생각한다'고 말한다. 백석은 여러 편의 시..

밖은 봄철날 따디기의 누굿하니 푹석한 밤이다 거리에는 사람두 많이 나서 흥성흥성 할 것읻 어쩐지 이 사람들과 친하니 싸다니고 싶은 밤이다 그렇것만 나는 하이얀 자리 우에서 마른 팔뚝의 새파란 핏대를 바라보며 나는 가난한 아버지를 가진 것과 내가 오래 그려오든 처녀가 시집을 간 것과 그렇게도 살틀하든 동무가 나를 버린 일을 생각한다 또 내가 아는 그 몸이 성하고 돈도 있는 사람들이 즐거이 술을 먹으려 단닐 것과 내 손에는 신간서新刊書 하나도 없는 것과 그리고 그 라도 들을 류성기도 없는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이 내 눈가를 내 가슴가를 뜨겁게 하는 것도 생각한다 -1938년 4월호에 발표한 시 -백석이 좋아했던 통영의 박경련과 그의 친구 신현중의 결혼(4월 7일에 결혼함) 후 쓴 시로 봄. -같은..

산山턱 원두막은 뷔였나 불빛이 외롭다 헝겊심지에 아즈까리 기름의 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잠자리 조을든 문허진 성城터 반딧불이 난다 파란 혼魂들 같다 어데서 말 있는 듯이 크다란 산山새 한 마리 어두운 골짜기로 난다 헐리다 남은 성문城門이 한울빛같이 훤하다 날이 밝으면 또 메기수염의 늙은이가 청배를 팔러 올 것이다 의 시 관련 내용 -1935년 8월 30일 에 발표함. 백석이 최초로 세상에 내놓은 시. -정주성이라는 시적 대상과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감각적인 이미지들을 차분하게 구사하는 시였다. 이 시가 특이한 것은 정주성이라는 쇠락한 옛 성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풍경의 묘사로만 그치지 않고 반드시 뒷부분에서 그 풍경을 배경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을 등장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메기수염의 늙은이'가..

가무락조개 난 뒷간거리에 빚을 얻으려 나는 왔다 빚이 안 되어 가는 탓에 가무래기도 나도 모도 춥다 추운 거리의 그도 추운 능당 쪽을 걸어가며 내 마음은 우쭐댄다 그 무슨 기쁨에 우쭐댄다 이 추운 세상의 한구석에 맑고 가난한 친구가 하나 있어서 내가 이렇게 추운 거리를 지나온 걸 어마나 기뻐하고 락단하고 그즈런히 손깍지벼개하고 누워서 이 못된 놈의 세상을 크게 크게 욕할 것이다 -백석이 1938년 10월호에 발표한 시. -시인은 돈을 빌리러 갔다가 실패한다. 돈을 빌리지 못해 안 그래도 추운 날씨가 더 춥게 느껴진다. 그런데 시인은 세상의 다급하고 현실적인 문제로부터 따돌림을 받아도 우쭐대고 기뻐한다. 그것은 "맑고 가난한 친구" 때문이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사는 그 친구를 떠올리면서 시인은 "못된 ..

📖 음식에는 가족이라는 공동운명체의 기질과 취향과 풍습이 반영되어 있다. 음식을 먹는다는 건 어떻게 보면 매우 사소하고 일상적인 행위일 뿐이다. 하지만 함꼐 밥을 먹었던 기억은 가족을 단단히 결합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음식의 공유는 기억의 공유로 곧잘 이어진다. 사소한 것을 통해 '조선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묻는 게 백석의 시라면 백석에게 음식은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먹을거리에 그치지 않는다. 백석의 시를 지배하는 음식이 거의 모든 시에 등장한다는 것은 그가 음식을 감각의 총하로 파악하고 의도적으로 시에 배치했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음식은 놀라운 친화력을 발휘해 독자를 시의 자장 안으로 강하게 끌어들인다. 📖 소월은 고향 관서지방에서 널리 불리던 서도민요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자신이 쓰는 시의 창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