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 정주성定州城

산山턱 원두막은 뷔였나 불빛이 외롭다

헝겊심지에 아즈까리 기름의 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잠자리 조을든 문허진 성城터

반딧불이 난다 파란 혼魂들 같다

어데서 말 있는 듯이 크다란 산山새 한 마리 어두운 골짜기로 난다

 

헐리다 남은 성문城門이

한울빛같이 훤하다

날이 밝으면 또 메기수염의 늙은이가 청배를 팔러 올 것이다

 

 

 

<백석 평전(안도현)>의 시 관련 내용

-1935년 8월 30일 <조선일보>에 발표함. 백석이 최초로 세상에 내놓은 시.

-정주성이라는 시적 대상과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감각적인 이미지들을 차분하게 구사하는 시였다. 이 시가 특이한 것은 정주성이라는 쇠락한 옛 성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풍경의 묘사로만 그치지 않고 반드시 뒷부분에서 그 풍경을 배경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을 등장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메기수염의 늙은이'가 바로 그것이다. 이 점은 백석의 시를 한가한 자연풍경을 노래하는 시로 고정시키지 않는 데 기여한다. 이후 발표되는 시에서도 백석은 과거의 기억을 환기하면서도 풍속과 사람을 겹치게 해서 보여주는 특기를 지속적으로 발휘한다. 이것은 시에 생생한 활기를 더해주는 동시에 독자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시에 참여하도록 만드는 독특한 효과를 얻어낸다.

-정주성은 조선 초기에 축성된 성이다. 처음에는 흙으로 쌓았다가 나중에 돌을 쌓아 개축했다고 한다. 성의 둘레가 2킬로미터나 되며, 성안에 스무 개가 넘는 우물이 있었고, 연못도 하나 있었다. 이곳은 1911년 홍경래의 난 때 홍경래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곳이다. 조선 후기는 소외받던 농민들의 불만이 커지고 케케묵은 봉건적 질서에 저항하는 세력들이 늘어가는 시기였다. 사회적 모순에 대한 저항의 분위기가 확산되자 홍경래는 평안도에서 거사를 일으켰다. 순식간에 평안도 일대를 장악한 홍경래의 반란군은 안주와 평양으로 진격하려다가 청천강에서 첫 패배를 당하고 정주성으로 후퇴한다. 관군은 정주성을 포위한 채 4개월 가까이 홍경래의 군대와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급기야 관군은 땅굴을 파서 성을 폭파한 다음 성내로 진입해 홍경래의 반란군을 굴복시켰고, 이때 홍경래는 총에 맞아 전사하였다. 그리고 반란군 2천여 명이 체포되어 현장에서 처형을 당했다. 홍경래가 난을 일으킨 지 5개월 만이었다.
  백석은 정주성이 한낱 스러져가는 성곽이 아니라 피비린내 나는 역사의 현장이었음을 잊지 않고 있었다. 깜깜한 허공을 날아가는 반딧불이를 "파란 혼魂들 같다"고 쓰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120년 전에 일어났던 홍경래의 난을 염두에 둔 표현이었다.